[착한경영! 이해관계자 경영]
#5.이해관계자 경영의 실천! 목적 있는 삶의 실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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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해관계자 경영의 실천! 목적 있는 삶의 실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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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자 경영은 기업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내리고 운영하는 경영이다. 여기서의 이해관계자는 주주뿐만 아니라 직원, 고객, 공급자, 지역사회, 환경 등 조직의 활동에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집단이나 개인을 포함한다. 이런 의미의 이해관계자 경영에서는 기업의 목적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왜냐하면, 기업의 목적은 거대한 사회 시스템의 하위 시스템인 기업이 사회 내 하위 시스템으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정의한 것으로서, 기업이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를 넘어서는 기업의 존재이유를 의미하고, 기업이 속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관계자 경영을 목적경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은 동일한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거대한 사회 시스템의 하위 시스템으로서의 기업의 존재이유와 역할을 규정한 목적은 기업 차원 뿐만 아니라 개인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해관계자 경영은 기업의 목적, 가치와 신념에 동의하고, 그것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개인들에 의해서 실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차원에서의 삶의 목적을 선명하게 규명하고, 기업의 목적과 정렬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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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살아온 과거의 배경도 다르고, 삶 속에서 원하는 가치도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누구의 삶이 더 훌륭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삶의 수준을 구별한다면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상중하 3수준으로 구별한다. 가장 낮은 수준의 삶은 미래가 없는 삶이다. 삶의 존재 이유인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삶이다. 삶의 목적은 크게 미션과 비전으로 구성되며, 미션과 열정의 발화점인 비전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말한다. 즉 목표와 지향점이 없는 삶으로서 표류하는 삶, 생물학적 호흡만 있는 삶을 말한다. 이런 삶보다 수준 높은 삶은 어떤 삶인가? 삶의 지향점이 존재하는 삶으로서 미션과 비전이 존재하는 삶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답을 갖고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미래의 미션과 비전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삶이다. 오직 미래의 그 꿈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가보고 싶은 곳을 가지 않는 삶이다. 그러나 나의 삶의 수준 구별법으로 보면 이런 삶도 결코 최상의 좋은 삶은 아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포기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최고 수준의 삶일까? 그것은 바로 미래와 현재가 통합된 삶이다. 미래의 목적(미션과 비전)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미래의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 삶이다. 왜냐하면 현재를 포기하면 고루한 금욕주의자로서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의 삶만 살면 쾌락주의자로서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삶은 미래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어 있는 삶이다. 나의 삶이 이렇게 수준 높은 삶인지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현재의 내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아래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지 살펴보면 된다.
내재적 만족 현재 내가 하는 일이 그 자체가 만족스러운가? 그리고 그 일은 타인의 지시와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인가? 이런 일의 감정적 경험은 '그 일에 흠뻑 취해서 그것을 즐기고 있으며, 다른 걸 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 일'이다. 이런 일은 일 자체가 보상이 되므로 돈과 명예 등의 외재적 보상은 부차적인 동기 유발 수단이 된다. 즉 내재적 만족을 주는 그 일은 자기목적성(Auto-Telos)을 띤다. 의미와 보람 현재와 미래가 통합된 삶을 사는 사람은 현재 수행하는 그 일이 사회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 더불어 현재 수행하는 그 일이 나의 미래 미션과 비전에 다가서기 위한 밀알이 된다는 사실에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 외재적 보상 외재적 보상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 보상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격려와 지지를 의미한다. 현재와 미래가 통합된 삶을 사는 사람에게 타인의 시선과 격려는 부차적인 것이나, 타인을 통해 얻게 되는 경제적인 보상은 현재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므로, 현재 수행하는 일이 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면서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현재의 쾌락을 위해 미래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미래의 꿈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현재의 필자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는 미래와 현재가 통합된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런 글쓰기 활동이 위의 세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이 글은 누가 쓰라고 필자에게 강요한 글이 아니다. 전적으로 필자가 좋아서 쓰는 글이다. 그리고 이 글이 필자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필자의 미래인 필자 삶의 미션에 다가서기 위한 작은 과업이라는 생각에 큰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누군가가 감흥을 얻고 좋은 피드백을 줄 것이라는 외재적 보상도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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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카르페 디엠과 "'seize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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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등산을 자주 가는 편이다. 친구들과 3월 초에 치악산을 갔었다. 치악산 정상에 오르는 두 개의 코스 중에서 가장 험하고 힘든 비로봉 코스를 선택했다. 비로봉 코스는 아주 좁고, 급경사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을 향하는 곳곳의 길목마다 큰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그 바위를 넘어서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미끄러지면 추락사의 위험이 존재하는 코스다. 더군다나 3월의 치악산은 겨우내 내린 눈이 녹지 않은 곳이다. 제대로 된 등산복도 안 입고, 신발도 농구화를 신고 젊다는 혈기 하나만 믿고 갔다. 급경사여서 팔과 다리 근육을 많이 써서 힘든 것은 견딜 만 했다. 숨쉬기 힘든 고통도 견딜 만 했다. 그러나 친구들 사이에 조성된 승부욕은 견디기 힘들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체력을 자랑하듯이 쉬지도 않고 그 험준한 코스를 올랐다. 자존심 때문에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못하고, 등행경기를 펼쳤다. 친구들 간의 자존심 경쟁 때문에 등행경기가 펼쳐진 그 곳에선 3월의 치악산을 향유할 여유가 없었다. 오직 누가 먼저 정상에 도달할 것인가? 목적과 결과에 기반한 승부욕만이 있었다. 더군다나 필자는 친구들에 비해 산을 잘 오르지 못하였다. 늘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산을 올랐다. 부아가 치밀었다.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나?'싶어서 다시 하산하려 했으나, 자존심도 상하고, 이미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그냥 천천히 오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친구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은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개의치 않고 그냥 천천히 오르기로 생각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치악산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 소리도 청명하게 들렸다. 3월의 치악산은 겨울 체취와 봄의 기운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해가 비치지 않는 응달에 쌓인 눈이 따스한 봄 햇살을 투영하고 있었다. 얼굴로 비친 그 따스한 햇살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 옆의 따뜻한 바위 옆으로 청솔모 두 마리가 뛰어다닌다. 3월의 치악산은 새 생명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바위에 걸 터 앉는다. 그리고 담배 한 대를 핀다.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서야 치악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르페 디엠은 영어로 'seize the day'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말로는 '현재를 즐겨라' 혹은' 현재를 잡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귀족학교에서 입시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키팅 선생님이 한 말로 유명해진 말이다. 이 말을 우리 말로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해서 대체로 보면 두 개의 견해가 존재한다. 한 부류는 '현재를 즐겨라'라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즐긴다'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어서 해석한다. 즉, 어느 나라 속담처럼 '젊음은 한 때이니, 젊음을 즐겨라'라는 쾌락에 주안점을 두고 해석한다. 그런데 또 다른 한 부류는 '현재를 잡아라'라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미래를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필자는 두 견해가 서로 대척점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견해는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현재를 즐기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삶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포기하는 삶은 쾌락주의 삶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삶은 금욕주의 삶이다. 두 삶 모두 왜곡된 삶이다. 현재와 미래가 단절된 삶이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삶은 죽은 삶이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삶은 죽음을 예정한 삶이다. 미션과 비전은 한 개인의 미래 청사진이다. 미래에 도달해야 될 생의 목적지를 현재의 시점에서 구체화한 사진이다. 이런 미래의 미션과 비전을 위해 현재의 삶을 즐길 수 없다면, 그 미션과 비전은 분명히 잘못 설정된 것이다. 내가 원하는 미션과 비전이고(내재적 만족) 그 미션과 비전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의미와 보람), 그 노력의 결과로 타인의 칭찬과 경제적 보상(외재적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현재의 삶을 즐길 수 있다. 이런 미션과 비전이 현재와 미래를 통합시키는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구성원이 많은 조직이 이해관계자 경영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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