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지식경영 이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노나카 이쿠지로의 지식경영 모형은 선배가 창조한 암묵적 지식이 후배에게 전수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모형의 핵심 개념인 '암묵지의 공유'는 사실 헝가리 출신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의 ‘인격적 지식’ 개념에 크게 영향받았다.
폴라니는 지식전수를 객관적 정보의 이전이 아니라 스승의 정체성과 신념, 철학이 반영된 지식을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전수받는 행위로 보았다. 노나카는 바로 이런 폴라니의 통찰을 조직차원으로 확장하여, 암묵적 지식이 스승과 제자의 ‘참 만남’을 통해 사회화되고, 그것이 다시 형식지로 전환되어 결국엔 조직 혁신으로 전개된다는 지식경영 모형을 발표하였다. 두 거장의 이론이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인공지능 시대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 살펴보자.
선배의 인격에 묻어 있는 지식
헝가리의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의 주장에 따르면 스승의 지식을 온전히 전수받으려면 스승의 인격과 삶을 제자가 직접 관찰하고, 모방하는 참여의 과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지식은 스승의 인격에 묻어 있기 때문에 스승의 말뿐만 아니라 몸짓과 목소리의 톤과 얼굴 표정 등을 통해 온전히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학분야의 연구실의 예를 보자. 제자가 스승을 만나지 않고 스승이 쓴 책만으로는 연구 노하우를 온전히 전수받을 수 없고, 실험실에서 스승이 시약을 다루는 손놀림, 냄새로 화학적 변화를 감지하는 감각적 판단을 직접 옆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이런 지식은 언어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고, 스승의 몸짓과 태도 속에서 암묵적으로 전수된다. 제자가 스승 옆에서 스승의 행동을 오감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전수받을 수 없는 것이다. 스승이 쓴 객관적 지식인 책으로는 전수받을 수 없는 지식이다.
화가와 제자의 예를 보자. 책으로는 스승의 붓 터치, 색감의 다양성을 익힐 수 없다. 제자는 스승 옆에서 그림을 보고, 스승이 “이건 느낌이 다르다”고 말할 때 그 ‘느낌’의 기준을 감각적으로 배운다. 이런 지식은 글로는 설명 불가능한 암묵적 지식의 영역이다. 그리고 제자는 스승이 예술 작품을 만드는 태도와 예술에 대한 가치와 철학도 함께 배운다.
관계의 철학에 기초한 이해관계자 경영과 지식경영
이해관계자 경영은 관계의 철학에 기초한다. 즉, 기업이 생존을 보장받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기업 내외부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상호간의 협력과 신뢰 행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이해관계자들과의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관계 구축을 경영의 핵심으로 보는 것이다. 기업을 독립적인 단일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고객, 직원, 공급업체, 지역사회 등)와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로 보는 것이다.
관계의 철학에 기초한 이해관계자 경영에서는 제품과 서비스의 혁신은 고객의 경험에 기반한 피드백 없이는 불가능하며, 공급망의 혁신은 협력사와의 장기적 신뢰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으며, 종업원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지역사회와 NGO 등의 회사에 대한 신뢰속에서 창출된다고 본다. 결국 기업의 경쟁우위는 이해관계자들과의 신뢰 관계속에서 전수되고 창조되는 지식과 정보의 토대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기업은 고객을 직접 만나서 고객의 인격에 묻어 있는 암묵적 지식을 배워야 하며, 협력업체를 직접 만나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직접 배워야 하며, 지역사회와 NGO의 불만속에서 담긴 암묵적 지식을 배워야 한다. 중요한 이해관계자들의 몸짓과 목소리의 톤과 얼굴 표정 등에 묻혀 있는 암묵적 지식을 전수받아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와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
인공지능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창조되면서, 기업 내부의 폐쇄적 연구개발에서 외부와 협력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성공하려면 참여자들 간의 지식과 정보가 온전히 공유되어야 한다.지식과 정보를 온전히 공유되기 위해선 글로 표현할 수 없고, 사람의 인격에 묻어 있는 암묵적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 몸짓과 목소리의 톤과 얼굴 표정 등에 담긴 지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들의 지식에 묻혀 있는 신념과 정체성 그리고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은 성공할 수 있다. 이는 이해관계자들과의 '참 만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