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다. 이제 직원들은 승진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임포족(임원포기자), 승포자(승진포기자)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과연 왜 승진을 포기하는가?
과거 승진은 직장생활의 꽃이었다. 특히 임원을 ‘별’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이제 임원을 포기한다. 그리고 굳이 승진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올해 단체협상에서 ‘승진거부권’을 요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승진하면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제 승진의 변화에 대해 깊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왜 승진을 거부할까?
승진을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 번째 승진을 하면 회사를 일찍 떠나야 한다.
우리나라는 고용안정성이 낮은 편이다. 희망퇴직, 권고사직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 퇴직이 이루어진다. 가장 회사를 오래 다니는 사람이 누구일까? 임원이 아니라 팀원이다. 임원의 경우 계약 종료 방식으로 조기에 퇴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즉, 임원을 진급하는 것이 회사를 빨리 그만두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직원들은 회사를 가늘고 길게 다닐 것인지 아니면 굵고 짧게 다닐 것이지는 고민한다. 고민 결과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 보다는 팀원으로 근무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두 번째 승진을 하면 연장·휴일근로수당이 없어지고 오히려 휴일에 출근한다.
팀장 등 관라자의 경우 연장 또는 휴일근로수당을 청구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팀장의 경우 솔선수범이라는 명목으로 시간외 근로수당 청구를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근무는 반대의 모습으로 이루어진다. 팀장이 되면 팀원일 때 보다 연장근로를 더 많이 하고 간혹 휴일에도 나와서 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쯤 되면 내가 굳이 팀장으로 승진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세 번째 승진을 하면 회사가 힘들 때 먼저 급여 또는 상여를 반납한다.
기업의 경기에 따라서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다. 회사가 힘들어지게 되면 급여 또는 상여를 반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우 고직급자부터 급여를 반납한다. 물론 고직급자의 책임이 크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항상 먼저 손해를 감수하라는식의 희생강요는 솔직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럴 바에는 승진을 하지 않고 팀원으로 남는 것이 더 낫다라는 생각이 든다.
네 번째 승진을 하며 책임만 커진다.
승진의 본래의 의미는 직무의 상승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 기업에서의 승진은 책임만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직무의 상승은 자신의 성장과 관련되기 때문에 긍정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책임의 증가는 그리 반갑지 않다. 즉,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질 사람을 정하기 위해서 승진을 시키는 것이라는 부정적 접근을 하게 된다. 특히 승진에 대한 추가 보상이 적은 경우에는 더욱 책임 증가에 대해서 거부감이 생기게 된다.
다섯 번째 승진을 하면 노동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강한 기업의 경우에는 노동조합원으로서 얻는 혜택이 많다. 노동조합원의 범위는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정하게 되는데 보통 팀장 등 관리자 이상 직급은 노동조합원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승진 후 노동조합에서 탈퇴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구성원은 승진으로 얻는 혜택과 노동조합원 자격박탈로 잃는 손해를 비교하는 현실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원은 정년까지 근무가 가능한데 비조합원은 50대 초반에 희망퇴직이 이루어진다면 승진을 하지 않더라도 노동조합원으로서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섯 번째 집값 상승 등 사회환경의 변화
과거에는 내집마련이라는 현실적인 이슈속에서 승진을 통한 높은 연봉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최근 가파른 집값상승으로 어차피 연봉으로 집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나아가 이제는 투잡, 주식, 투자, 유튜브 등 다양한 소득증대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굳이 승진을 통한 임금인상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승진에 관한 변화 방향성
승진중심에서 임금중심으로 인사관리 변경
우리나라의 인사관리는 승진중심 인사관리를 선택하였다. 5단계 직급체계를 예를 들어 보자.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직급이 있다. 그리고 보통 4년에서 5년을 체류연수로 정하고 승진심사를 한다. 즉, 4~5년을 주기로 승진을 시켜주며 조직을 관리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조직이 성장하는 경우에는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조직이 정체되면 승진 포지션이 줄어들기 때문에 승진탈락자 동기저하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나아가 지금처럼 승진을 통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진 상황에서는 승진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된다. 따라서 이제는 승진중심에서 임금중심 인사관리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승진을 통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임금을 통해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승진을 보상이 아니라 선발의 관점으로 접근
우리나라는 승진을 보상의 개념으로 접근했다. 즉 열심히 일한 직원에게 승진을 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낳게 된다. 예를 들어 팀원일 때 일을 잘한 직원이 팀장으로 승진 후 부적응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현재 직급에서 일을 잘 한 직원이 다음 직급에서 일을 잘하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제 승진을 보상이 아니라 선발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승진을 선발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성과보다는 역량을 더 중요한 승진의 판단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업은 팀원일 때 일을 잘 한 사람을 팀장으로 승진시킨다. 그러나 승진결정의 바람직한 방향은 팀장의 역량을 가진 사람을 팀장으로 승진시켜야 한다. 물론 팀원일 때 기준이상의 성과를 달성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직무의 성과책임 명확화
성과책임(accountability)이란 ‘해당 업무가 성과를 창출할 책임’을 말한다. 조직의 팀장, 본부장 등 직책에 대해서 성과책임을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성과책임 규명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승진 후 업무수행 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감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인사팀장의 성과책임은 무엇일까? ‘인사관리를 잘한다’가 아니다. 인사팀장의 성과책임은 ‘인사관리의 공정성을 높인다’. ‘노무관리의 노동법적 안정성을 높인다’, ‘핵심인재를 육성한다’.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한다’ 등으로 표현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 중 본부장의 성과책임, 팀장의 성과책임을 규명한 기업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본부장, 팀장 등 직무에 대한 성과책임을 명확히 규명한 후 이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일하는 성과책임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직무급 도입
승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직무급을 도입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승진제도의 문제점은 연공을 기반으로 승진을 결정하는 방식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연공기반 승진이란 승진연차를 기준으로 승진후보자를 선정하고 승진심사를 통해서 승진자를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제 이러한 연공기반의 승진은 변화된 환경속에서 점차 유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직무급은 승진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직무급이 도입되면 정기승진은 사라지게 된다. 직무의 상승이 승진이기 때문에 승진은 수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직무상승의 승진은 개인의 성장과 경력개발관점으로 접근되기 때문에 승진에 대한 부작용이 대부분 해소될 수 있다. 또한 직무급의 승진의 경우 직무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승진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게 된다.
승진을 성취동기 관점에서 접근
모든 사람이 승진을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승진은 성취동기와 연계하여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람마다 성취동기가 다르다, 성취동기가 높은 사람은 승진을 선호한다. 그러나 성취동기가 낮은 사람은 현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와 같이 승진은 성취동기라는 개인의 성향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승진제도 변화방향이 될 수 있다.
승진제도 개편 방안
팀장 등 보직자 임명 시 충분한 금전적 보상
먼저 승진 시 적정한 수준의 금전적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기업의 팀장 수당이 지속적으로 인상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팀장수장이 월 20만원~30만원 수준이었으나 최근에서 월 100만원~150만원 수준까지 상승하였다. 팀장 등 보직자의 경우 목표합의-수시코칭-성과리뷰 등 성과관리 코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직무이다. 따라서 해당 직무수행을 인정하는 관점에서 승진 시 적절한 수준의 추가적인 보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역량기반의 승진자 결정
승진자 결정의 핵심요소는 역량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성과평가 결과가 우수한 직원을 승진시킨다. 예를 들어 ‘성과평가 80%, 대표이사 20%’ 로 승진자를 결정하는 회사가 아직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인사평가 시 승진자 우대현상 등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며 과거 성과에 매몰되는 문제점을 야기한다. 따라서 이제 승진제도 설계 시 성과평가는 최소기준 정도로 인식되도록 하며 역량에 대하여 별도진단을 통해 승진자를 결정하는 승진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승진 신청제도 도입
이제 회사가 일방적으로 승진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승진 신청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즉, 본인 스스로가 승진 신청을 하는 방식을 말한다. 최근 일부 기업들이 승진신청서 제출, 승진에세이 작성 등의 방식으로 승진신청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승진 신청제도는 향후 적극적 업무수행, 직무 적합성 강화, 본인 의사존중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승진심사 시 동료평가 반영
기업경영의 핵심이슈는 ‘협업(Collaboration)’을 어떻게 증대시킬 것인가이다. 협업은 가장 중요한 기업경영 요소이지면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요소이다. 따라서 승진 시 동료평가를 반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승진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조직내에서 나혼자 잘났다라고 행동하는 사람과 자기 마음대로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어야 한다. 이러한 동료평가의 강화를 통해서 조직 내 독고다이가 줄어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협업의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승진제도의 변화방향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승진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조직과 개인 모두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새로운 승진제도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